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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하범 / 작성일2026-10-0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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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예찬, J.S.Bach (1732) 'Ei! wie schmeckt der Coffee süße', J. S. Bach (1732) 흔히 ‘서양 음악사의 3B’로 부르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는 커피광이었다. 베토벤은 매일 아침 원두 60알을 골라내 커피를 추출했다. 커피광들에게 ‘60’은 베토벤의 숫자다. 베토벤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보낸 브람스 역시 자신이 내린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미국 보건 당국과 학계가 여성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30년간의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커피를 통해 카페인을 지속적으로 섭취한 여성이 ‘건강하게 늙을’ 확률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차(茶)나 콜라같이 다른 카페인 함유 음료에서는 건강한 노화와의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와 아랍이 원산지인 커피는 오스만제국 시대에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세계화의 발걸음을 뗀다. 이슬람에서 건너왔기에 기독교 문화권에서 커피는 악마의 음료 정도로 치부됐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에 매료돼 족쇄를 풀면서 커피는 모든 유럽인의 기호품이 됐다. 커피가 유럽의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나아가 프랑스대혁명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커피는 카페를 만들었고 이성과 토론 문화를 확산시켰다. 평생을 경건과 근엄으로 일관한 듯이 보이는 서양 음악사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커피를 예찬하는 이 세속적인 칸타타를 발표한 곳도 라이프치히의 카페였다. 이 칸타타는 커피에 빠진 신세대 젊은 딸과 아버지의 세대 갈등을 코믹하게 다룬다. 이 ‘커피 예찬’의 아리아는 이 칸타타의 네 번째 곡이다. 커피는 바흐도 위트 넘치게 만든다. “아! 커피 맛이란 정말 기막히지/ 수천 번의 키스보다도 달콤하고 무스카토 와인보다도 부드럽지/ 커피, 커피를 나 마셔야 해/ 누가 날 즐겁게 해주려거든/ 아, 내 커피잔을 채워주면 돼요(Ei! wie schmeckt der Coffee süße/ Lieblicher als tausend Küsse/ Milder als Muskatenwein/ Coffee, Coffee muss ich haben/ Und wenn jemand mich will laben/ Ach, so schenkt mir Coffee ein!).” - 강헌 음악평론가양갓집 규수들에게 커피하우스 출입을 금지한 결과들커피, 또는 차 한 잔이 우리에게 주는 것카사트 '티타임'vs 바흐 '커피 칸타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 파(派)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겠지만, 나는 커피는 반드시 뜨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여름처럼 2026 무시무시한 폭염에도 아이스커피는 한두 번밖에 마시지 않은 것 같다. 나에게 커피는 집이든 카페이든 간에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아니면 명상(이랄까 멍때리기랄까)을 하면서, 또는 편안한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홀짝홀짝 조금씩 마시는 음료다. 얼음과 함께 휘리릭 섞어서 꿀꺽꿀꺽 단숨에 마시는 음료는 적어도 내게는 커피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마시려면 스무디나 과일 주스, 탄산수 등등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죽어도 뜨거운 커피’라는 취향은 어쩌면 집순이라는 내 성향과 맞물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대개는 시원한 카페가 아니라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서 거리를 걸으며, 또는 회사로 돌아가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이스커피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나 활동적인 사람들, 집보다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원이다. 이 어쭙잖은 나의 관찰은 어찌 보면 유럽 사회에 커피가 도래하고, 그 어떤 음료수보다 커피가 인기를 얻게 된 내막과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커피를 통해 사람들은 사교와 정보를 나누고 더 활발히 움직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커피는 17세기 중엽에 오스만 튀르크에서 오스트리아를 거쳐 유럽에 들어왔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오스만 튀르크의 전사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 대신, ‘카네’라는 나무의 열매를 말린 콩에 물을 붓고 끓여서 마셨다. 유럽인들은 이 새까만 음료수, 오스만 튀르크인들이 ‘카페’라고 부르는 음료를 마시면 신기하리만치 정신이 번쩍 든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문제는 이 음료의 맛이 너무도 쓰다는 데 있었다. 1683년, 오스만 튀르크 군대의 전리품에서 얻은 커피콩으로 빈의 커피하우스 ‘블루 보틀’을 연 게오르크 콜쉬츠키는 까만 음료에 우유와 꿀을 섞었다. ‘카페 라테’의 탄생이었다. 유행에 민감했던 루이 15세의 정부 마담 퐁파두르는 오스만 튀르크의 왕비(술타나) 복장을 입고 흑인 하녀가 건네는 커피잔을 받아 드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샤를-앙드레 반 로, 술탄의 왕비 의상을 입은 퐁파두르 부인, 1747 파리 장식미술관. - 위키미디어유럽은 지역을 막론하고 커피에 열광했다. 런던, 빈, 라이프치히, 파리, 로마 등에 커피하우스가 앞다투어 등장했다.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음료수를 마시며 쉬는 곳이 아니라 사교와 토론의 장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 토론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의논했으며 일을 하기도 했다.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보험회사와 신문이 만들어졌고 파리의 극장 옆 카페 ‘프로코프’는 연극이 끝난 후 배우와 관객들이 몰려오는 아지트가 되었다. 빈의 ‘첸트랄’처럼 유럽의 오래된 커피하우스들은 지금도 신문 여러 종을 입구에 배치해놓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과거 인쇄물을 쉽게 구할 수 없을 때 신사들이 커피하우스에 와서 신문을 보았기 때문이다.루트비히 파시니, 로마 커피하우스 '그레코'의 예술가들, 1856, 종이에 수채, 함부르크미술관. - 위키미디어 커피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여성들도 커피를 즐겨 마셨다. 그러나 여성들, 특히 양갓집 규수들은 19세기 후반까지도 거리의 커피하우스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미혼 여성들은 보호자(샤프롱) 없이는 집 바깥으로 나가기 어려웠다.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노동자 계층이었고 좋은 집안, 부유한 가문의 딸들일수록 자유롭게 살기가 더 어려웠다. 하다못해 커피 한 잔 마시러 바깥에 나갈 자유까지도 제한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인상파의 중요한 두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1841~1895)와 메리 카사트(1844~1926)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상파의 가장 기본적인 강령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햇빛과 대기를 관찰해서, 그 변화를 화가의 주관적 시선으로 화폭에 옮기는 데에 있다. 이 강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주제를 그리든 간에 우선 야외에 나가야 한다. 그러나 소위 ‘양갓집 규수’에 속했던 모리조와 카사트는 동료 화가들과는 달리 야외에 이젤을 세우고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차선책으로 두 사람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집 안에 머물러 있는 가족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거실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는 여성들의 모습이다.베르트 모리조, 화분에 물을 주는 젊은 여성, 1876, 캔버스에 유채, 리치몬드 버지니아 미술관. / 메리 카사트, 차 한 잔, 1880,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메리 카사트, 티타임, 1880, 캔버스에 유채 보스턴미술관.- 위키미디어 카사트의 작품 두 점, ‘티타임’과 ‘차 한 잔’은 모두 집 안의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 여성들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티타임’에는 우아하고 안락하지만 약간은 미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림에는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왼편의 여성, 머리를 틀어 올리고 갈색 드레스를 입은 채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는 여성은 화가의 언니 리디아 심슨이다. 리디아는 턱을 괸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 시선은 허공 중 어딘가에,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에 가 머물러 있다. 막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은 리디아보다 더 격식을 갖춘 차림새다. 모자를 쓰고 긴 장갑을 낀 모습으로 보아 이 여성은 리디아를 찾아온 손님인 듯싶다. 여성은 한 손으로 찻잔 받침을 들고 우아한 포즈로 차를 마시는 중이다. 갈색 테이블 위에는 은쟁반과 은빛 티포트(Tea pot)가 올려져 있다. 언뜻 보기에도 귀한 물건들로 보인다. 실제로 이 티포트들은 카사트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진 가보들이었다. 카사트는 커다란 티포트의 반사광을 대담한 붓질로 표현했다. 티포트의 묘사를 통해 우리는 카사트가 바깥의 빛과 대기를 그릴 기회를 많이 얻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인상파에 속한 화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대리석의 벽난로와 그 위의 거울, 중국풍의 푸른 도자기, 붉은 세로선이 그어진 벽지 등등 실내는 고상하게, 그리고 적당히 사치스럽게 꾸며져 있다. 화가는 실내의 장식이나 요소들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시선으로 처리했다. 리디아가 앉아 있는 안락의자의 붉은 꽃무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력이 그리 좋지 못한 방문객이 바라본 거실의 인상 같은 느낌이다. 이 거실의 인상, 순간적으로 포착된 듯한 실내장식과 반짝이는 티포트를 통해 우리는 한 부유한 저택의 오후 일과를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손님과 주인 사이의 분위기가 아주 친숙하지는 않으며, 약간의 낯선 감정이 섞여 있다는 사실까지도 감지할 수 있다. 커피와 차 같은 따뜻한 음료가 없었다면 이 거실의 분위기는 훨씬 더 딱딱했을 것이다. 뜻밖의 커피 광 작곡가, 바흐카사트와 모리조가 거실에서 차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데에 비해서, 라이프치히의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일찌감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으로 바삐 일하던 시절에 바흐는 ‘조용히, 잡담은 그만’이라는 제목의 세속 칸타타를 한 편 작곡했다. 이 작품은 오늘날 ‘커피 칸타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작품에서 커피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은 아버지와 딸 리첸, 그리고 해설자 세 명. 반주 역시 단출한 구성이다. 리첸은 소위 말하는 ‘커피광’이다. 매일 꼭 세 잔의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아버지는 딸에게 커피를 못 마시게 한다. 당시에는 커피가 얼굴을 검게 만들고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딸은 커피를 못 마실 바엔 차라리 죽겠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이 해프닝은 리첸이 커피를 좋아하는 남자에게 시집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커피 칸타타’는 간단히 무대를 구성해 오페라처럼 공연하기에 적격인 작품이다. 바흐는 ‘콜레기움 무지쿰’이라는 음악 단체를 위해서 이 칸타타를 작곡했는데, 일찍이 텔레만이 설립한 이 단체는 라이프치히의 유명한 커피하우스 ‘짐머만’에서 자주 콘서트를 열었다. 모두 열 곡의 아리아와 레시타티브로 이루어진 이 유쾌한 칸타타에서는 리첸이 부르는 ‘아, 커피는 얼마나 달콤한가!’라는 아리아가 가장 유명하다. 명랑하고 통통 튀는 리첸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서 바흐는 밝은 음색의 플루트 선율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바흐, ‘커피 칸타타’ BWV. 211 중‘아, 커피는 얼마나 달콤한가!’. 대화의 윤활유 역할이거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에너지원, 오후의 휴식 등등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많은 이들에게 커피 한 잔이 단순한 일상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커피는 내 자신에게 선사하는 작은 위로 아닐까 싶다. 오늘도 수고했어, 라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다정한 손길 같은 위로 말이다. 적지 않은 제약 속에서 화가 생활을 해나가야 했던 카사트에게도, 37년간 직장을 다니면서 박봉과 많은 일을 감내해야 했던 바흐에게도 한 잔의 커피가 따스한 위안이 되어주었기를 바라본다. - 전원경 예술 전문 작가·세종사이버대 교수 운이 좋아지는 커피를 찾아서최근 2026. 6. '운세박람회'라는 독특한 전시회가 열렸다. 행사장 내 '오행 카페'에 내가 볶은 커피를 제공하기로 하면서 이색적인 풍경과 마주했다. 전시장에 가득한 사람들 상당수가 의외로 20~30대 청년들이었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자기 삶의 방향을 찾으려 애쓰는 젊은 얼굴들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정작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 것은 그들이 메뉴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이 흡사 의사 선생님 앞에서 처방을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던 거다. 저는 목(木)의 기운인데요."화(火)가 부족하다는데 뭘 마시면 좋을까요?"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그들은 진심으로, '지금 내게 더 필요한 에너지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동양 철학에서 우주 만물을 이룬다고 하는 다섯 기운, 즉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는 인간의 몸과 감정 나아가 오미(五味)와도 연결된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이 개념을 커피의 플레이버와 접목해 다섯 종류의 드립백 커피를 만들어보는 재미난 시도를 했다. 목(木)은 새로운 시작과 성장을 상징하는 신맛이다. 화사한 산미는 움트는 봄의 기운을 닮았다. 화(火)는 쓴맛이다. 깊게 볶은 커피의 묵직한 쓴맛은 열정과 추진력을 떠올리게 한다. 참고로 커피는 본래 불로 볶으며, 커피 자체가 지닌 쓴맛으로 화(火)의 성격을 띤다. 토(土)는 단맛이다. 캐러멜과 견과류를 연상시키는 달콤함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심신의 균형을 잡아준다. 금(金)은 매운맛이다. 커피가 고추처럼 맵지는 않지만, 계피나 후추처럼 스파이시한 향미가 있다. 수(水)는 짠맛인데, 미네랄로 인해 좋은 강배전 커피에서 은은한 짠맛의 풍미가 느껴진다. 깊은 물처럼 조용히 사색하게 만드는 맛이다. 이건 과학적 분석이라기보다 일종의 유쾌한 해석에 가깝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사주가 오행의 균형을 중시하듯, 커피도 결국은 밸런스의 예술이잖은가. 지나치게 시지도 쓰지도 않은 조화로운 맛이 최고의 커피인 것과 같은 이치다. 요즘 젊은 세대가 사주나 MBTI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하고 부족한 걸 보완하기 위함일 것이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산미가 도드라지는 커피를 찾고, 누군가는 묵직한 쓴맛을 원한다. 그건 단순한 취향을 넘어 커피가 지닌 여러 기운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 아닐까. 하여 오늘 나는 쫀득하고 진한 강배전 커피 한 모금으로 에너지를 보충해야겠다. -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와이로커피 대표한국·미국 Z세대의 기묘한 ‘얼죽아 동맹’세계 지도에 겨울철 커피 온도를 색칠해 본다면? 아마 빨갛게 물든 대륙들 사이에서 파랗게 빛나는 나라가 눈에 띌 것이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의 나라’, 한국과 미국이다. 커피의 본고장 유럽에서 한겨울 얼음 든 커피를 마시는 건 커피에 대한 도발처럼 보일 수 있다. 여름이면 얼음 위로 커피를 바로 떨어뜨리는 ‘플래시 칠(flash chill)’ 커피를 즐겨 마시는 일본에서도 겨울 커피의 기본 값은 뜨거운 커피다. 하지만 유독 한국과 미국만은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스커피가 인기를 끈다. 2016~2023년 사이 미국 소비자의 차가운 커피(아이스·콜드브루·프라페 포함) 소비액은 2배 이상 늘었다. 최근 몇 년 미국 스타벅스에서도 겨울 분기 콜드 음료 비율이 60%를 웃돈다. 2022년 국내 주요 커피 체인 매장의 전체 음료 매출 가운데 76%가 아이스 음료였고, 스타벅스·폴바셋·할리스 등 대형 체인 대부분에서 겨울철 아이스 음료 비율이 60%를 넘는다. 강추위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보다 10% 더 많이 팔릴 정도다. 이쯤 되면 군사·경제 동맹을 넘어선 기묘한 얼음 동맹이다. 도대체 왜, 전 세계에서 이 두 나라는 계절을 거슬러 얼음을 선택하는 걸까. 젠지(Gen Z)가 쏘아 올린 얼음 공아이스커피 열풍의 출발점은 세대에 있다. 한국에서는 편의상 MZ세대라 통칭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트렌드를 이끄는 축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Gen Z)다. 지난해 미국 커피협회 설문조사에서 18~24세 성인의 45%가 전날 아이스커피를 마셨다고 답한 반면, 25~39세에서는 그 비율이 30%에 그쳤다. 미국과 한국의 Z세대에게 커피는 기성세대가 즐기던 따뜻한 휴식이나 사교의 도구가 아니다. 커피는 자신을 표현하는 소품이자, 즉각적인 에너지원이다. 동시에 이 얼음 왕국은 기업들이 깔아 놓은 판이기도 하다. 시간을 거슬러 1990년대, 미국의 커피 업계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젊은 층이 씁쓸한 커피 대신 톡 쏘는 탄산음료를 아침 음료로 선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업계는 커피를 따뜻한 차의 영역에서 달콤하고 시원한 청량음료의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2018년 미국의 던킨도너츠가 사명에서 ‘도너츠’를 떼어내고 음료 중심의 ‘던킨’으로 리브랜딩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읽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미국은 패션, 한국은 생존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신다는 면에서는 두 나라가 비슷하지만 그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미국에서 아이스커피는 일종의 달콤한 간식이자 패션 아이템이다. 쓴맛을 싫어하는 미국 젊은 층에게 차가운 온도는 쓴맛을 가려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들은 얼음 위에 차가운 우유 거품을 얹고, 시럽이나 소스를 뿌려 자신만의 화려한 음료를 완성한다. 벤티 사이즈의 거대한 컵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나는 쿨하다’는 표현이다. 반면 한국의 얼죽아 세대에게 커피는 생존 연료이자 해소제에 가깝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것은 화려한 프라푸치노보다 깔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커피 취향에도 반영된 셈이다. 점심시간은 짧고 일은 많다.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식힐 여유조차 없는 직장인들에게, 빨대를 꽂아 즉각적으로 카페인을 공급할 수 있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템이다.추운 겨울에도 아이스 커피를 찾는 젠지. /틱톡한번 길들이면 돌아가기 어려운 맛아이스커피 선호는 맛의 문제이기도 하다. 뜨거운 커피는 마실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받자마자 마시면 입천장을 데기 쉽고, 마시기 딱 좋은 온도는 금방 사라진다. 반면 아이스커피는 바로 마실 수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한 맛을 유지한다. 쓴맛과 텁텁한 뒷맛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차가운 온도는 커피의 향과 쓴맛을 부드럽게 눌러 주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우유와 시럽이 더해지면 쓴맛은 더 순해진다. 추운 겨울은 아이스커피를 즐기는 사람에게 오히려 최적의 계절이다. 바로 마실 수도 있지만 책상 위에 한 잔 올려 두고 하루 종일 조금씩 마시기에도 좋다. 입맛이 한 번 아이스커피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다시 뜨거운 커피를 마시기 어려울 수 있다. 맛과 향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뜨거운 커피는 휘발성 향이 한꺼번에 피어오르고, 산미와 쓴맛이 전면에 튀어나온다. 하루 종일 은은한 배경 음악처럼 아이스커피를 마시던 사람에게는 향이 너무 세거나 맛이 직설적이라는 인상이 남기 쉽다. 얼죽아들이 이제는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잘 못 마시겠다고 말하는 데에는 단순한 세대 취향을 넘어 맛을 느끼는 방식의 변화, 즉 감각의 재배선이 숨어 있다. 여기에 카페인의 체감도 다르게 작용한다. 뜨거운 커피는 조금씩 식혀가며 천천히 마시게 되지만, 아이스커피는 벌컥벌컥 마시기 쉽다. 카페인은 온도와 무관하게 흡수되지만, 같은 양을 더 짧은 시간에 마시면 체감 효과는 빨라진다. 아이스커피를 마시면 각성이 더 빠르게 온다는 경험담의 상당수는 사실 온도보다 마시는 속도의 문제에 가깝다. 아이스커피, 건강에는 괜찮을까매년 겨울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얼죽아는 빈혈의 증거”라거나 “위장에 치명적”이라는 식의 건강 염려 기사다. 그중에는 아이스커피 마시는 것을 영양가 없는 얼음을 강박적으로 씹어 먹는 빙식증(얼음 과식증)과 연결 짓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위장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이스커피가 뜨거운 커피보다 건강에 특별히 더 나쁘거나 좋은 것은 없다. 사실 이런 건강에 대한 염려가 유럽·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겨울철 아이스커피의 인기가 덜한 이유일 수 있다. 오랫동안 체액설(질병이 체액의 불균형 때문에 생긴다는 이론)을 신봉한 유럽에서는 한때 얼음물 자체를 몸에 좋지 않다고 여겨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국 역시 찬 음료가 기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믿어왔다. 지금은 사라진 믿음이지만, 찬 것은 몸에 안 좋다는 오래된 직관은 아직도 남아 있다. 한국과 미국의 젊은 세대는 그런 오래된 금기보다 현실적 편의성을 택한 셈이다. 아이스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커피는 뜨거운 차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났다. 이제 커피는 물이나 탄산음료처럼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며 갈증을 해소하고 에너지를 채우는 전천후 음료로 확장됐다. 난방이 잘 된 실내에서 일하고, 빠른 각성을 원하고,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한, 이 얼음 동맹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아이스커피 한 잔이 더 익숙한 세대가 커피 트렌드의 새로운 주인이니까. -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보여주기’ 콘텐츠 된 커피 새 유행으로 부상한 ‘양동이 커피 / 2026.4. 출시된 1.4L 양동이 커피. 던킨도너츠일반 성인의 방광 용량은 약 500mL. 고로 화장실을 세 번은 다녀와야 한다. 무려 1.5L이기 때문이다. 커피 체인점 라떼킹 성수점이 이달 초 출시한 ‘양동이 커피’는 이름 그대로 양동이(Bucket)에 담아준다. 양동이 뚜껑에 빨대 구멍이 있다. 1.5L여도 1인용인 것이다. 유행의 첨단 서울 성수동 일대에는 커피와 얼음으로 꽉 찬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한 달도 안 돼 이곳 전체 매출의 2위 메뉴로 올라섰다. 블루빈컴퍼니 김태준 대표는 “빅 사이즈는 시각적인 재미가 커 발길 유도 효과도 크다”며 “효과가 확인된 만큼 전 지점으로 판매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던킨도너츠는 최근 1.4L짜리 ‘자이언트 버킷’ 커피를 내놨다. 기존 스몰 사이즈 음료보다 4배 크다. 본토에서 시작된 유행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등 일부 매장에서 대식가들을 겨냥해 실험적으로 판매가 이뤄졌는데, 타 지역 원정 고객까지 생겨나는 등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에 정식 메뉴로 승격했고 한국까지 진출했다. 틱톡 등 소셜미디어는 즉각 흥분했다. 신기한 외관에 ‘양동이째 드링킹’이라는 행위 자체가 훌륭한 놀잇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포스트는 “색다른 형태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고 소개했다. 한국인의 보약,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거대해지고 있다. 커피 시장 확장에 힘입어 350mL 남짓했던 용량이 700mL→1000mL→1500mL로 잇따라 몸집을 불린 것이다. 세계 1위 스타벅스도 컵을 키웠다. 커피 사랑이 남다른 한국에 아시아 최초로 초대형 트렌타(887mL) 사이즈를 출시했다. 일반적인 톨 사이즈에 비해 3배 가까이 크다. 한정 판매 상품으로 내놨다가 두 달여 만에 150만잔이 팔리는 등 수요가 폭발하자 상시 판매로 전환했다. 용량이 바뀌면 용기도 바뀐다. 경남 양산의 산장 카페 우드앤숲에는 ‘다라이카노’가 있다. 6L. 컵이 아니라 사실상 ‘다라이(대야)’라고 봐야 한다.양동이째 드링킹, 커피 업계의 새 판도는 대식가의 나라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라스트 드롭 커피 / 정수기 물통을 연상케하는 대용량 버블티. /온라인 커뮤니티커피의 초대형화는 고물가 시대의 불황형 소비와 떼놓을 수 없다. 크기는 4~5배지만 가격은 일반 제품의 2~3배 수준으로 책정돼 있다. 실제로는 필요 이상의 소비여도 심리적으로 이득을 본 느낌을 주는 ‘착시 가성비’로 고객을 유인하는 것이다. 게다가 커피는 직장인의 필수 소비재로 인식되는 품목. 회사원 한모(39)씨는 “과도한 양 같기는 해도 일하면서 종일 마시니 여러 잔 사 먹는 것보다 싸게 먹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커피에 이어 차(茶)도 대열에 뛰어들었다. 정수기 물통과 비슷하게 생긴 용기에 1L 버블티를 담아 파는 쥬씨&차얌뿐 아니라, 공차코리아 역시 지난해 망고 자스민티 등 음료 5종을 1L 대용량으로 출시했다. 역시 “가성비 중시 소비 성향을 반영했다”고 했다. 맛보는 재미에서 보는 재미로, 커피가 음료에서 ‘콘텐츠’로 바뀌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국에 카페만 10만7000곳이 넘는 상황에서 비슷한 맛 대결 대신 파격적 비주얼로 승부를 보는 전략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편의점 업계에서는 ‘8배 큰 컵라면’ 등 제품 출시 당시부터 먹방 유튜버를 겨냥하는 방식으로 흥미 요소에 치중해, 비정상적으로 큰 제품의 푸짐한 인기를 견인한 바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음식이든 뭐든 눈길부터 끌어야 살아남는 소셜미디어 시대의 소비 방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한 카페인 최대 일일 섭취 권고량은 성인 400㎎ 이하. 아메리카노 약 2~3잔 수준이다. 4~5잔에 달하는 양동이 커피를 다 마실 경우 이를 훌쩍 초과한다. 카페인 과잉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 수면 질 저하 등의 이유로 커피 섭취에 주의를 기울이는 건강 트렌드와도 반대 방향이다. 눈에 띄기 위해 더 과격해지면서 ‘적정량’을 중시하는 사회 풍토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유불급. - 정상혁 조선일보 기자장마철, 볶은 원두가 ‘물 먹는 하마’가 되는 시기막 '후지로얄'판매를 시작했을 때, 제주 출장이 잡혀 설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주, 맛있는 물. '제주에서 마시는 커피는 얼마나 맛있을까?'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입안에 남는 꿉꿉함에 실망하며 마음속으로 연신 '뭐가 문제일까?'를 반복했다. 물도 좋고, 사장님들 추출법도 문제없고, 볶아진 콩은 예쁘기만 한데…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게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마치 뜻뜻한 물이 가득 찬 어항으로 들어가는 물고기가 된 느낌이었다. 문을 잡은 채로 멈춰버렸다. 그때 뒤에서 손님의 칼 같은 외침이 날아왔다. 더워요, 문 닫아요. 아! 범인은 '습도'였다. 제주의 여름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습도가 98%까지 오르곤 한다. 바로 이 높은 습도가 커피의 맛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리고, 로스팅 직후, 뜨거워진 원두를 식혀야 하는 '냉각 시간'에 원인이 있었다. 막 볶아낸 원두는 열기로 인해 조직이 최대로 팽창해 있다. 그리고 다공질(多孔質) 구조인 세포 안에는 가스를 품고 있다가, 냉각과 동시에 빠져나온다. 가스가 힘차게 밀려 나올 때는 주변 공기가 침투할 틈이 없다. 하지만 완전히 식으면 상황은 역전된다. 비어버린 세포 안으로 눅눅한 수분과 주변의 냄새가 흡수되다. 그야말로 '물 먹는 하마, 냄새 먹는 하마'가 된다. 특히 1층의 오픈형 로스팅 공간이 있는 카페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손님이 오갈 때마다 문틈으로 외부의 눅눅한 공기가 여과 없이 들어와 쿨링 중인 원두를 덮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로스터리 카페 사장님들에게 습도가 높은 날에는 냉각 통에 두고 식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가스를 빼는 시간'을 두기보다 열기가 가시면 서둘러 밀봉할 것을 권한다. 본격적인 장마철이다. 사방이 눅눅하고 공기는 낮고 무겁게 가라앉는다. 세상과 맞닿은 마음의 1층 문이 열릴 때마다 외부의 기운이 여과 없이 밀려든다. 평소라면 스쳐 지났을 무기력 혹은 타인의 부정적인 말들도 그 틈을 타고 스펀지처럼 내 감정에 스며든다. 그러니 이 장마철에는 맛있는 커피를 지키듯 우리 마음 역시 외부와의 접촉 시간을 줄이고 '현명한 밀봉'을 할 필요가 있다. 장마는 머지않아 끝날 것이고, 곧 다시 쾌청한 날은 찾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안의 맛과 향을 잃지 않도록, 유독 습한 날에는 마음의 지퍼백도 단단히 여며 보자. -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와이로커피 대표카페 무료 커피 찌꺼기, 그냥 두면 ‘곰팡이 폭탄’… 전자레인지 3분 건조 거치면 천연 탈취·기름 흡착제로 변신동네 카페 입구 바구니에 ‘자유롭게 가져가세요’라는 안내문과 함께 놓인 커피 찌꺼기(커피박)는 손쉽게 집어 들기 좋은 일상 속 나눔 품목이다. 냉장고나 신발장에 두면 은은한 원두 향과 함께 악취를 잡아준다는 생각에 가져오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하얗고 푸른 곰팡이가 피어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적지 않다. 원두를 추출하고 남은 커피박은 수분 함량이 80% 안팎에 달해 상온에 그대로 두면 2~3일 만에 곰팡이가 번식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완전 건조’라는 단 한 단계만 거치면 집안 곳곳의 찌든 냄새와 기름때를 잡는 고성능 천연 살림 밑천으로 거듭난다. 카페 입구에 놓인 무료 나눔 커피 찌꺼기. 추출 직후 커피박은 수분 함량이 80% 안팎에 달해 상온에 그대로 두면 2~3일 만에 곰팡이가 번식하기 쉽다 /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얇게 펼쳐 담은 커피박. 2~3분간 가열해 내부 수증기를 날려주면 악취 분자를 흡착하는 다공성 구조가 살아난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탈취제의 기본은 ‘수분 제로’전자레인지 3분의 원리커피박을 집으로 가져왔다면 가장 먼저 수분을 날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넓은 접시나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커피박을 얇게 펼쳐 담은 뒤 2~3분간 가열한다. 중간에 한 번 숟가락으로 뒤섞어 뭉친 수증기를 빼주면 속까지 바싹 마른다. 기기를 돌리는 동안 전자레인지 내부에 밴 음식 냄새까지 덤으로 잡힌다. 완전히 건조된 커피가루는 숯과 유사한 ‘다공성(미세한 구멍이 많은 구조)’을 띤다. 이 미세 구멍들이 주변 악취 분자를 강력하게 흡착하는 구조다. 바싹 말린 커피박을 시중에서 판매하는 육수용 다시백이나 헌 양말에 나눠 담으면 천연 탈취제가 완성된다. 김치 냄새가 밴 냉장고 구석, 땀 냄새가 차는 신발장, 습기가 차기 쉬운 싱크대 하부장에 넣어두면 퀴퀴한 냄새를 가라앉힌다. 탈취 효과는 보통 3주쯤 지속된다. 생선 비린내 밴 프라이팬 기름때세제 없이 닦아낸다기름진 음식을 자주 조리하는 주방에서도 커피박은 세제 이상의 몫을 해낸다. 육류를 굽거나 생선을 조리한 뒤 기름이 흥건한 프라이팬에 건조된 커피가루를 두세 큰술 뿌려 문지르는 방식이다. 커피박의 유분 친화적 성질이 굳어가는 기름기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생선 특유의 비린내까지 가라앉힌다. 기름을 흡수한 가루를 키친타월로 가볍게 긁어모아 닦아낸 뒤 미온수로 헹구면, 하수구에 폐식용유를 흘려보내지 않으면서도 미끌거림 없는 세척이 가능하다. 화분 거름 직행은 금물배출은 반드시 ‘일반 쓰레기’ 다시백에 담아 냉장고 안쪽에 비치한 건조 커피가루. 김치나 반찬 냄새를 흡착하며 탈취 효과는 3주쯤 지속된다./ 기름기가 흥건한 프라이팬에 건조된 커피가루를 뿌려 문지르는 모습. 커피박 특유의 유분 친화적 성질이 기름때와 생선 비린내를 흡착해 세제 없이도 말끔하게 닦인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커피박을 천연 비료로 여겨 건조 후 화분 흙 위에 바로 쏟아붓는 것은 피해야 한다. 완전히 발효·부숙 과정을 거치지 않은 커피박은 흙 속에서 부패하며 유기 가스를 내뿜고 열을 일으켜 식물 뿌리를 썩게 만든다. 화분에 쓰려면 흙과 1대 9 이하의 비율로 극소량만 섞거나 전문 퇴비화 과정을 거쳐야 안전하다. 다 쓴 커피박을 폐기할 때도 분리배출 기준을 혼동하기 쉽다. 가공 전 원두는 식물성이지만, 추출 과정을 거친 커피박은 비료·사료 원료 기준에 적합하지 않아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종량제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 – 양다훈 세계일보 기자커피와 돼지: 품종과 테루아의 평행이론오월의 제주는 눈부시다. 푸른 바다와 짙어지는 녹음, 그리고 커피와 돼지고기까지. 나에게 제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출장지 중 하나다. 제주의 카페 사장님과 식사를 하던 중, 흑돼지와 백돼지를 맞춰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식당 측 협조로 즉석 블라인드 테스트가 열렸다. 단순히 살코기와 비계의 차이를 넘어, 식감과 밀도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있었다. 그 미묘한 감각의 결 위로 문득 커피가 떠올랐다. 호리구치 도시히데의 최신작 '커피 철학과 과학'(황소자리)에서는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품종'과 '테루아*'를 강조한다. 뛰어난 향미를 자랑하는 게이샤 품종의 맛이 재배지에 따라 천차만별인 현실을 두고 토양과 기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커피의 경우, 고지대에서 자란 콩은 서늘한 기온과 큰 일교차를 견디며 천천히 여문다. 이렇게 자란 원두는 조직이 치밀하여 '하드빈'이라고 부른다. 밀도가 높으니 로스팅 과정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복합적인 향미와 좋은 산미, 단맛을 품는다. 반면 저지대에서 빠르게 자란 '소프트빈'은 대체로 조직이 무르고 맛의 밀도도 얕아지는 경향이 있다. 참고로 커피나무는 열대기후의 고도가 높은 곳, 일교차가 큰 선선한 지대에서 잘 자라는 꼭두서니과 목본이다. 다소 과감한 비유일 수 있는데, 백돼지가 카티모르(Catimor) 품종이라면 흑돼지는 티피카(Typica)나 게이샤(Geisha)에 가깝다. 백돼지는 병충해에 강하고 성장 속도도 빨라서 효율적 생산이 가능하다. 반면 흑돼지는 성장이 더디고 사양이 까다롭지만, 제대로 길러냈을 때 특유의 고소함과 쫀득한 식감을 지닌다. 커피에 자연의 테루아가 있다면, 돼지에게는 사양 환경이라는 '인위적 테루아'가 존재한다. 어떤 먹이를 먹고 어떤 환경(온도, 기간 등)에서 자랐는지가 풍미를 결정한다. 적합한 환경에서 적절하게 키워졌는가가 본질인 셈이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생명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기다림의 시간이 단축될 때, 밋밋한 커피 혹은 비계만 많은 고기가 된다. 기후 변화와 산업화로 생장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좋은 맛은 더욱 선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진정한 맛과 향은 적절한 환경에서 적절한 시간을 견뎌낸 것들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참, 흑돼지와 백돼지를 제대로 구분해서 맞혔냐고? 당연하다. 고기와 커피를 탐닉해온 내 시간의 힘은 예상보다 셌고, 그런 나 자신이 몹시 자랑스러웠다. 하하. -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와이로커피 대표*테루아(Terroir): 토양, 풍토를 뜻하는 프랑스어.향(香)의 공격, 잃어버린 은은함 얼마 전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원두를 선물받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박스를 열었을 때, 코끝을 강타한 건 원두 향이 아닌 진득한 '인센스(Incense)'였다. 당혹감에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인센스를 보관하던 창고 옆에 포장지를 보관했다며 그 정도로 향이 강한지 몰랐다고 사과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그 결과가 너무 선명했다. 커피 원두는 본래 다공질(多孔質) 구조다. 수많은 미세 구멍을 가진 세포벽은 제 몸 안의 가스와 함께 머금고 있던 향을 내뿜는 동시에, 주변의 냄새를 무섭게 빨아들인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배어 나오는 커피 오일은 주위 향기 성분을 흡수해 가둬버리는 성질이 있다. 커피가 천연 탈취제로 사랑받는 이유이자 보관에 극도로 예민해야 하는 이유다. 제 향을 잃고 다른 향을 머금은 원두는 더는 커피라 부르기 민망하다. 헤이즐넛 커피가 향은 좋지만 맛없는 이유가 이런 까닭이다. 이 해프닝은 '포스트 코로나'시대 우리 삶의 단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바이러스가 할퀸 상흔 중 하나는 후각과 미각의 교란이었다. 코로나 이후 많은 이들이 예전의 섬세한 감각을 되찾지 못하 고 있다. 감각이 무뎌지면 자극은 필연적으로 강해진다. 이를 증명하듯 거리에는 은은한 여백 대신 공격적으로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가 진동한다. 카페 메뉴는 더 요지경이다. '테루아'가 빚어낸 원두 본연의 미묘한 향미, 산미와 단맛, 그 깊은 풍미를 즐기던 미덕은 사라지고, 특이한 향의 '정체불명 커피'가 넘쳐난다. 따지고 보면 두쫀쿠나 버터떡 같은 디저트에 열광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감각이 둔해져 후각과 미각 역치가 높아졌다는 존스홉킨스의대 연구(2022년)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작 문제는 감각의 상실 정도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는 듯하다. 며칠 전 한 백화점의 커피 시음 행사에 다녀왔다. 이름난 카페들이 대표 상품을 내걸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죄다 비슷해 보였다. 유행에 편승한 약배전의 자극적 산미와 풋내, 미간이 찌푸려질 만큼 낯선 가향, 마시지 않아도 이미 맛이 보이는 상품들이었다.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맛있다'고 인지할 수 없는 것인지, 불편한 냄새가 행사장을 압도했다. 자극에 매몰돼 우리는 맛과 향에 대한 태생적 감각을 잃어가는 것일까. 인센스 냄새 밴 커피를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자극에 오염되지 않았던 시절의 '은은한 세상'을 그리워한다. -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와이로커피 대표고양이 똥 커피의 독특한 향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중 하나로 알려진 코피 루왁(Kopi Luwak), 일명 고양이 똥 커피는 원두 1파운드에 수백 달러가 넘는다. 이름만 들어도 특이한 이 커피는 왜 그렇게 비싸고, 또 왜 독특한 향을 내는 걸까? 인도 케랄라 중앙대학의 팔라티 시누 교수 연구진이 10월 말 발표한 사이언티픽 리포트의 논문에서 그 비밀의 일부가 밝혀졌다. 고양이 똥 커피의 향은 단순히 마케팅이나 희소성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사향고양이의 소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생화학적 변화 덕분에 생기는 것으로 보고했다. 사향고양이는 잘 익은 커피 열매를 먹고, 그 씨앗인 커피콩은 위와 장을 거치면서 장내 미생물들에 의해 고양이가 먹은 음식들과 함께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커피콩은 효소와 장내 미생물의 영향을 받아 단백질과 지방, 당류, 유기산의 조성이 달라진다. 특히 장내 미생물의 하나인 글루코노박터 속 균들이 활발히 작용해 당을 산화시키며 유기산을 만들고, 이들이 커피콩 속으로 스며들어 향미를 바꾸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양이 똥 커피와 사람이 수확한 같은 커피원두를 화학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면 고양이 똥 커피에서는 카프릴산과 카프르산의 농도가 더 높게 나왔다. 이들은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향의 주성분으로 염소젖이나 버터 향을 내는 지방산 메틸에스터다. 또한 전체 지방 함량이 일반 커피보다 40%가량 높았다. 지방은 향기 분자들을 흡착하고 휘발 속도를 늦춰 고양이 똥 커피의 향이 오래 남고 부드럽게 퍼지게 한다. 또한 단백질과 카페인 함량은 다소 낮았는데, 이는 사향고양이의 위 속에서 단백질이 효소에 의해 분해되면서 짧은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으로 전환되고, 일부 카페인은 흡수되거나 화학적으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양이 똥 커피는 일반 커피보다 쓴맛이 줄고, 감칠맛이 증가되며, 산도도 낮아진다. 단백질이 줄면서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 결합이 감소하고, 카페인이 낮아지면서 자극적인 쓴맛도 줄어든다. 이 복합적인 화학반응을 통해 사람의 혀와 코가 느끼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장에서 일어나는 발효 과정과 같이 사향고양이의 장에서 글루코노박터 같은 미생물들이 설탕을 유기산으로 바꾸고, 이들이 커피콩 내부로 침투해 새로운 향기 분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시누 교수팀의 연구는 커피콩을 볶지 않은 생두 상태에서 분석했다. 이는 과학적으로 매우 타당한데, 로스팅 과정에서 지방산과 향기 화합물이 급격히 변해 분석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사향고양이 소화 과정이 만들어내는 지방산 변화가 향의 근본 원인이며, 로스팅을 통해 그 차이는 더욱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즐기는 이 특별한 향 뒤에는 바람직하지 못한 윤리적 그림자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향고양이를 좁은 우리에 가둬 강제로 커피 열매를 먹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공 사육형 루왁 커피는 품질이 낮고, 무엇보다 동물복지 차원에서 매우 심각하다 하겠다. 시누 교수팀이 야생 서식지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배설물만을 사용해야 하며, 생태계 보전과 윤리적 소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결국 고양이 똥 커피의 향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희소성이 아니라, 미생물과 효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 커피 한 잔에는 동물 생리학, 미생물 발효학 그리고 향기 화학이 모두 들어 있다. 우리는 그 향을 맡을 때마다 인간의 기술이 아닌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섬세한 생물화학반응의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 고양이 똥 커피가 가진 진짜 특별함이 아닐까. -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머리 대면 잔다더니오후 2시 커피 한 잔, 밤잠 45분 줄었다 밤 11시에 잠든다면 오후 2시 12분에 마신 커피도 그날 수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국제학술지 ‘수면의학리뷰(Sleep Medicine Reviews)’에 실린 24개 연구의 체계적 문헌고찰·메타분석 결과다. 카페인이 잠을 방해하는 이유카페인은 졸음을 일으키는 물질인 아데노신의 작용을 막는다. 피로를 없애는 게 아닌 뇌가 졸음 신호를 받지 못하게 일시적으로 차단한다. 호주 가톨릭대 연구진이 이끈 이 메타분석에서 카페인을 섭취하면 총수면시간이 평균 45분 줄었다. 수면효율은 7%p 낮아졌다.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수면잠복기)은 평균 9분, 잠든 뒤 깨어 있는 시간은 평균 12분 늘었다. 연구진은 카페인 107mg이 든 250mL 커피를 기준으로, 총수면시간 감소를 피하려면 취침 최소 8.8시간 전에 마셔야 한다고 추산했다. 밤 11시에 자면 오후 2시 12분까지다. 같은 커피에도 반응은 달랐다반응이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분해 속도다. 카페인 대사의 95% 이상은 간의 CYP1A2 효소가 맡는다. 건강한 성인의 카페인 반감기(몸속 카페인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간)는 평균 4~5시간이다. 연구에 따라 2~10시간까지 보고돼 개인차가 크다. 유전자도 영향을 준다. ‘중개의학저널(Journal of Translational Medicine)’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은 26개 연구, 185만1428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CYP1A2·AHR·ADORA2A 등 여러 유전자 변이가 평소 카페인 섭취량이나 대사와 연관됐다. 뇌의 카페인 민감도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뉴트리션 리뷰스(Nutrition Reviews)’에 실린 22개 연구 분석은 ADORA2A 유전자 변이가 카페인 섭취 뒤 불안이나 수면장애의 개인차와 관련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유전자만으로 카페인에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평소 커피를 얼마나 마시는지, 담배를 피우는지, 어떤 약을 복용하는지에 따라서도 카페인 반응과 체내 잔류 시간이 달라진다. 금연하면 카페인 분해 느려져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카페인을 빨리 분해하는 경향이 있다. 담배 연기 속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가 CYP1A2 활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니코틴 자체보다 담배가 탈 때 나오는 연소 생성물의 작용으로 알려져 있다. 금연하면 이 효과가 사라진다. ‘Clinical Pharmacology &Therapeutics’에 실린 연구는 금연 후 시간이 지나면서 CYP1A2 활성이 어떻게 변하는지 조사했고, 카페인 청소율이 줄어든다는 결과를 얻었다. 금연 후에는 같은 양의 커피도 몸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금연이 곧바로 불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금연 뒤 평소 마시던 커피가 유독 강하게 느껴지거나 잠을 설친다면 섭취량과 마시는 시간을 점검해 보는 게 좋다. 100mg은 차이 없고, 400mg은 12시간 전에도 영향카페인은 마신 시각뿐 아니라 한 번에 마신 양도 중요하다. ‘SLEEP’ 2025년 4월호에 실린 무작위 교차시험은 평소 하루 카페인 섭취량이 300mg 미만인 남성들에게 카페인 100mg과 400mg을 각각 취침 12시간·8시간·4시간 전에 먹게 했다. 100mg은 세 시간대 모두 위약과 비교해 객관적·주관적 수면 지표에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400mg은 달랐다. 깊은 수면(N3)이 취침 12시간 전 섭취 시 평균 20.6분, 8시간 전 15.3분, 4시간 전 29.7분 줄었다. 취침 8시간 이내에 먹으면 잠든 뒤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등 수면 분절도 뚜렷했다. 본인이 느끼는 수면과 실제 측정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취침 4·8시간 전에 400mg을 먹은 참가자는 잠든 뒤 깨어 있는 시간이 객관적으로 유의하게 늘었지만, 이를 뚜렷이 인식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섭취 시점이 취침 시간에서 멀수록 스스로 수면 방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커피를 언제부터 끊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오후 2시 이후에는 누구나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평소 커피를 마셔도 잘 잔다고 생각한다면 잠드는 속도만 보지 말고, 새벽에 자주 깨는지, 아침에 개운한지, 커피를 줄이면 수면이 달라지는지도 확인해 보는 게 좋다.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거나 최근 담배를 끊었다면 더 주의해야 한다. 남들이 하루 몇 잔을 마시는지보다 내가 커피를 마신 뒤 잘 자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 김현주 세계일보 기자디카페인의 지금이건 디카페인 옵션 있어요? 최근 2026. 7. 카페 카운터 앞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질문이다. 질문의 결도 이전보다 훨씬 섬세해졌다. 단순한 카페인 유무를 넘어 원두의 가공 방식이나 향미까지 다채롭다. 이러한 관심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작년 디카페인 커피 수입량은 1만t을 돌파해 4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카페인 없는 커피'라는 대체재에 머물렀던 디카페인이 이제 당당한 주류 카테고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변화는 디카페인 커피가 '맛없고 어설픈 대용품'이라는 오명을 벗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품질 원두에 화학 용매로 카페인을 제거하던 방식은 옛말이 됐다. 이제 물부터 달라졌다. 캐나다의 청정수를 쓰는 스위스 워터 공법이나 멕시코 빙하수로 카페인을 씻어내는 마운틴 워터 공법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블루보틀도 마운틴 워터 공법을 활용한다. 커피를 내리면 갓 구운 크렘 브륄레와 바닐라 향이 인센스를 피운 듯 퍼진다. 키라임의 여운을 남기는 산미가 조화를 이루며 나이트 라이트라는 이름처럼 밤 시간의 공기를 한층 가볍게 채워준다. 최근엔 사탕수수의 천연 성분으로 카페인을 제거하는 추출법도 개발됐다. 향미 손실이 거의 없다고 한다. 꾸준히 발전해온 커피 과학이 편견을 하나둘 날려버린 셈이다. 세계적인 커피 경연대회에서도 디카페인의 위상은 높아졌다. 2024년 미국 브루어스 컵에서 디카페인 원두가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자인 웨이홍 장은 처음 이 커피를 접했을 때 디카페인인지 몰랐다고 했다. 전문가인 바리스타조차 일반 커피와 구별하기 힘든 수준, 그것이 지금 디카페인이 도달한 자리다.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디카페인이 이제 가장 권위 있는 무대 위에 올라섰다. 고객도 달라졌다. 디카페인을 찾는 손길은 더 이상 카페인에 예민한 소수가 아니다. 더 잘 자고, 더 건강하게, 그러면서도 커피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려는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도 디카페인은 이미 자연스러운 옵션이 됐다. 디카페인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 중 하나인 브라질은 지금 독특한 실험을 하고 있다. 인위적인 유전자 변형(GMO)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카페인이 적거나 거의 없는 품종 개발을 목표로 한다. 유전자 조작 없이도 수확량이 많고 안전한 품종을 키워내겠다는 장기 프로젝트로, 현재 브라질 농장 곳곳에서 테스트 중이다. 2030년 상업화를 목표로 연구 중이라고 하니 성공한다면 자연 그대로의 디카페인 커피를 마실 날도 머지않았다. 고객 눈높이에 맞춘 더 건강하고 맛있는 디카페인을 향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카페인을 걷어낸 그 한 잔 안에 아직 채워지지 않은 가능성이 가득하다. - 임홍주 블루보틀 커피 이커머스 매니저커피는 억울하다 매일 마시는 커피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면 큰 뉴스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한 전문가는 커피 속 발암물질을 언급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과학적 맥락을 무시한 과도한 우려이다. 양에 대한 정보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커피에 아크릴아마이드와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중요한 맥락이 빠져 있다. 커피 속 함량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아크릴아마이드는 감자튀김·토스트·쿠키·시리얼에도 들어 있다. 커피는 이보다 함량이 훨씬 낮다. 커피 87잔을 마셔야 중간 사이즈 감자튀김 한 팩에 해당하는 아크릴아마이드를 섭취하는 셈이다. 벤조피렌은 나무·고기 같은 유기물이 불완전 연소할 때 생기는 물질로 고소하게 볶아 짜낸 참기름에도 들어있다. 커피 한 잔에 들어 있는 벤조피렌 양은 훈제 생선이나 숯불고기·담배연기 등에 비해 현저히 적다. 방송에서 소개한 것처럼 한때 미국에서도 커피 발암물질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2018년 3월,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은 커피 속 아크릴아마이드를 문제 삼아 스타벅스를 포함한 프랜차이즈 매장에 담배처럼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 조치는 3개월 만에 뒤집혔다. 캘리포니아 규제당국은 2018년 6월 커피가 암을 유발한다는 근거는 없으며, 경고문 부착은 과도하다고 판단해 입장을 철회했고, 미국 FDA도 커피의 잠재적 위험보다 건강상 이점이 더 크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도 커피를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에서 제외했다. 반면 뜨거운 음료는 식도 점막을 자극하여 식도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암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겨울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단 얘기다. 실제 역학 연구들에서도 커피 섭취가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의 연구 결과가 더 많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 간암, 자궁내막암, 파킨슨병, 우울증, 제2형 당뇨병 등의 위험이 낮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두려움을 자극하는 주장에 흔들려 커피를 피할 이유가 없다. “모든 물질은 독이며 단지 용량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독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라켈수스가 르네상스 시대에 남긴 말이다. 특정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것과 위험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한국인의 벤조피렌·아크릴아마이드 노출량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이미 낮은 수준이며 식약처에서는 식품 제조·가공·조리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들 물질 함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건강에 대한 어떤 주장도 양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빠져있다면 거르는 게 좋다. -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커피는 심장에 독?심방세동 재발률 17%P 낮춘 조사도 어릴 때 외국에서 오랜 기간 일하던 아버지 친구분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 외국 생활을 얘기하며 일할 때 커피를 물처럼 마신다는 얘기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 커피를 마시고 출근해서 아침에 한 잔 더 마시고 오후에도 회의가 있거나 잠시 시간이 나면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는 일상을 되돌아 보면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있지 않나 싶다. 여러 통계 자료에서 한국인 1년간 커피 소비량이 전세계 평균의 2~3배가량이라고 들었고, 길거리에 수많은 커피 전문점을 보면 커피는 한국인의 일상의 음료라 하겠다. 이번엔 커피가 심장, 특히 부정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뤄보고자 한다. 커피, 불면증에 역류성 식도염 악화시키기도커피는 카페인을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인 음료이다. 카페인은 중추신경계 자극체이고, 잔틴의 유도체이다. 커피의 coffe- 와 물질을 뜻하는 -ine 가 붙어서 caffeine 됐다는 어원에서 보듯 커피콩에서 추출되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문호인 괴테를 친구로 둔 독일의 과학자 프리들리프 페르디난트 룽게가 19세기 초에 추출했는데, 왜 커피가 사람들을 깨우는 효과가 있는지 알려달라는 괴테의 요청을 받아 연구하다가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병원에서는 각성을 위한 보조제, 조산아 무호흡증, 두통 치료에 사용한다. 이때 대개 사용하는 용량이 ㎏당 5~20㎎을 사용한다. 보통 커피 한 잔에는 카페인 100~150㎎이 포함되어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1일 카페인 최대 섭취량은 성인 400㎎ 이하, 임산부 300㎎ 이하라고 하니 하루 3잔까지는 허용범위 내라고 할 수 있다. 커피를 하루 4잔 이상 마시면 병원에서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용량에 상응하는 정도이다. 카페인의 주의사항에 대표적인 것이 심장에 대한 것인데, 고용량에서 빈맥, 조기박동(엇박), 여러 심장 부정맥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부정맥·두근거림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특히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관상동맥 중재술 혹은 우회술을 받은 분들에게 몇 주 동안은 카페인을 섭취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 이런 이유로 외래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커피 마셔도 되나이다. 그 외에도 각성으로 인한 불면증, 두통을 일으키기도 하고 위산 분비가 증가되어 위궤양, 역류성 심도염을 악화시키기도 하고, 철분·칼슘 흡수를 방해하기도 한다.그래픽=정수경 중앙일보 기자 지난해 말에 미국의사협회저널에 커피에 대한 재미있는 논문(DECAF 연구)이 발표되었다. 심방세동이 있는 환자들 200명을 각각 100명, 커피군(적어도 한 잔 이상 커피 복용)과 절제군으로 배정하고 6개월 동안 심방세동의 재발률을 비교하였다. 커피군에서는 대략 하루 한 잔 커피를 마셨는데, 심방세동 재발률은 커피군에서 47%, 절제군에서 64%으로 오히려 커피군에서 낮았고, 그 외 이상반응 발생률은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의 결과는 커피가 심방 부정맥을 유발한다는 것과 반대의 결과이다. 커피에는 카페인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학적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화합물들의 이로운 효과가 오히려 심방세동 재발 위험을 실제로 감소시킬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또 같은 저널에 올해 커피에 대한 논문이 게재되었는데, 카페인 섭취와 인지기능, 치매 위험의 관계를 비교하였다. 10만 명 이상을 사람들을 카페인 섭취에 따라 4군으로 나눠서 치매 발생과 인지기능 저하를 추적 관찰했다. 카페인 함유 커피 섭취량이 많을수록 치매 위험이 낮아지고 인지 기능 저하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디카페인 커피 섭취는 치매 발생 감소나 인지 능력 향상과 관련이 없었다. 이러한 효과는 카페인을 함유한 하루 2~3잔의 커피, 하루 1~2잔의 차에서 가장 크게 관찰되었다. 심방세동이 매우 강력한 인지기능 저하, 치매의 위험인자임을 고려하면 심방세동 환자들에서 적당한 양의 카페인 섭취가 이로울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연구 결과이다. 외래에서 커피를 마셔도 되는지를 묻는 환자분들(대부분 부정맥 환자)에게 이렇게 답변을 드린다. “술과 달리 커피는 개인 차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커피를 마셨을 때 느끼는 불편감이 심하다면 피해야겠지만 1~2잔 정도의 커피를 마셨을 때 별다른 증상이 없다면 커피를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설탕 추가를 최소화하고 지나치게 진한 커피는 피해는 것이 좋습니다.” 경험에 근거해서 이렇게 설명을 드렸는데, 위의 두 연구 결과를 보면서 내 경험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커피를 안 마시던 분들도 보약처럼 마시려고 노력하거나 지나치게 커피를 많이 마시는 습관을 유지할까 걱정이 된다. 위의 두 연구 결과는 커피의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결과가 아니라 하루 권장량 이하의 커피가 인체에 나쁘지 않음을 보여준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너무 커피를 마시고 싶은 분들이 부정맥이 있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지나치게 커피를 절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고 커피 한 잔에도 두근거림이 심한 분들이 애써 참아가며 커피를 마시는 것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디카페인은 치매 발생 감소와 관련 없어가끔 드라마에서 졸음을 피하기 위해 커피를 마셔 가며 일하거나 공부를 하다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과거에는 커피가 각성의 도구 같은 나쁜 이미지가 있었다면 요즘의 커피는 나른한 오후에 맛있는 씁쓸함에 잠시의 여유 갖는 쉼의 이미지이다. 심장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맛있는 커피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 오일영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고기 먹고 바로 커피 한 잔“‘입가심’이 철분을 버린다”철분 풍부한 고기, 커피와 만나면 ‘흡수 급감’식사 후 커피는 많은 이들에게 일상적인 마무리다. 기름진 고기를 먹은 뒤에는 느끼함을 씻어내기 위한 ‘후식’처럼 여겨진다. 영양학계에 따르면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대표적인 철분 공급원이다. 철분은 혈액을 통해 산소를 운반하고, 각 장기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미량 영양소다. 문제는 고기를 먹은 직후 마시는 커피다. 커피에 들어 있는 타닌과 카페인은 철분과 쉽게 결합한다. 타닌이 철분과 만나면 ‘탄닌철’이라는 결합물이 형성된다. 이 형태의 철분은 장에서 잘 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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